미디어북
성지를 담다
저자 윤영선
판형 크라운판
페이지 296
발행일 2018-12-21
ISBN 979-11-959051-9-5
정가 35000
판매가 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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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희생이 시공간을 초월하며

 

 

[성당을 그리다] [성당을 새기다]에 이어 [성지를 담다]를 내게 되었다. [성지를 담다]를 내게 된 시발점은 고산 되재공소에서 본 아주 소박한 하얀 십자가의 프랑스 신부님 두 분의 무덤에서 받은 감동 때문이었다. 이삼십대에 타국에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한국의 교우들에게 주신 사랑과 희생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판 모르는 낮선 한국땅과 한국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만큼 얼마나 사랑했을까 생각하니 그 사랑과 슬픔, 애잔함 등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났었다. 그러다가 2016 12월 중순 절두산성지에서 미사를 드리는 중에 다블뤼 주교님을 주인공으로 하는앙투안, 사랑하다라는 음악극을 소개 받게 되었고, 12 29일에는 손골성지에서 남동생의 기일미사를 드리다가 윤민구신부님으로부터 프랑스 선교사들과 다블뤼 주교님의 얘기를 귀담아 듣게 되었고, 2017 1 1일 마지막 공연일에 드디어 음악극을 보게 되었다. 그 이후 2년여의 성지 방문과 작품과정에서 하느님과 성모님 그리고 모든 순교성인들 중에서도 특히 다블뤼 주교님의 이끄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지그림을 그리려고 마음먹은 후 우선한국 천주교 성지순례를 사서 읽어본 다음 지역별로 안배하여 직접 성지를 방문하여, 미사를 드리고자 계획하였다.

 

2016 12월초 한티성지를 방문하면서, 대구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참석하였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와 같이 4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어릴적 친구들의 얼굴을 대하니 기억창고 속에 담겨있었던 잃어버린 시간들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왠지뿌리를 찾아 온 느낌이 들어서, 옛날 그 시절, 그 산야, 그 공기, 그 풍토, 그 냄새, 그 감정까지 스멀스멀 일어났다. 초등학교 운동장 나무에서 뚝 떨어져서 나를 기겁하게 했던 송충이까지 생각나고, 날개가 달려 회전하며 내려오곤 하던 단풍나무 씨앗도 생각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다는 것은 기억의 한 단면들, 특히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이미지, 감정, 느낌, 기억저장고에 알알이 박혀있는 세포들을 깨우는 것이었다. 나의그림으로 떠나는 성지순례이야기도 아마도 이러한 느낌의 여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가톨릭신자이면서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았던 이 땅의 순교성인들에 대한 진정한 바라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성지를 방문하면서 본 풍경과 느낌을 어떻게 하면 그림을 통해 보는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는 그림을 그릴 때 그냥 느끼면 저절로 되는 줄로만 알았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지는  성인들이 박해받고 순교한 피의 현장으로 느껴져서 거룩함 이전에 다소 무섭게 느껴졌다. 이러한 개인적인 선입견 없이 어떻게 하면, 거룩한 땅 성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신앙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게 그릴 수 있을까가 그림을 그리는 내내 풀어야 할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성지에 대해 찾아가고 알아가는 여정과 그림에 대한 여정이 나란히 같이 가게 되면서 성지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점차 나만의 질서 법칙을 찾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지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답도 같이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이번 책은 쓰기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웠는지. 1, 2권은 떠오르는 문장들을 주워 담기가 바쁘게 써내려 갔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원고에 대한 심한 압박감을 느끼던 11월초에 평소 다니던 죽전성당의 성체조배실에 갔던 날 여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기도를 드리는데 뒤에 앉은 여성이 책장을 넘기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하였다. 시간이 흘러 뒤에 앉은 여자가 문을 열고 나간 바로 그 순간 내가 그동안 다녀왔던 성지들의 모든 성인들이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셔서 방을 꽉 메우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가운데는 다블뤼 주교님도 계셨으며, 힘들었던 나의 마음에 평소 청하고 싶었던 축성을 따뜻하게 해주셨다. 그 순간 나의 기도는 눈물과 콧물과 함께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방석 위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 신비로운 느낌과 맡기고 싶은 마음, 주님과 다블뤼 주교님을 비롯한 모든 성인분들이 함께하심을 체험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