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에 모르게 보증금 받아쓴 양도인, 횡령죄 성립 안돼... 대법 판례
변경, 대법원 전원합의체, 무죄 취지 파기환송
횡령죄로 처벌하던 판례 바꿔
채권을 양도한 후에도 직접 채권을 추심해 써버린 사람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판단이 나왔다. 채권양도인이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 등으로 해결하면 충분하다는 취지로, 횡령죄로 처벌하던 종전 판단을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횡령죄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인천에서 건물을 임차해 식당을 운영하던 A씨는 2013년 중개업자의 소개로 전남 순창에 토지를 가진 B씨와 교환계약을 맺었다. A씨의 식당을 보증금 반환채권(2000만원)과 함께 넘기는 대신 B씨 토지에 500만원을 더해 받기로 한 것이다. B씨는 중개인을 통해 500만원을 A씨에게 줬다.
두 사람은 교환대상 토지를 순창에서 안동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 차이로 갈등을 빚었다. 그러던 중 A씨는 2014년 3월 임대인에게 보증금 2000만원 중 밀린 월세를 뺀 1146만원을 돌려받아서 써 버렸다. 그는 가게 양도 사실을 임대인에게 통지하지 않고 보증금을 받아써 버린 일로 횡령죄로 기소됐다.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이 양도됐을 경우 이 사실을 임대인에게 알려 자신이 아닌 B씨가 보증금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심과 2심은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채권양도 후 양도통지를 하기 전 채권을 추심해 써버린 경우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해 온 기존 판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대항요건을 갖춰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돈을 받은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니라 양도인에게 귀속되고, 채권양도인이 양수인을 위해 이를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횡령죄는 ‘금전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돈을 횡령한 경우에 성립한다. 하지만 일단 돈을 받은 이상 돈의 소유권은 채권을 양도한 사람에게 있어서 보관하던 남의 돈을 써버린 경우에 적용되는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채권 양수인은 계약대로 하지 않은 양도인에게 손해배상 소송 등 민사적 방식으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뿐 형사처벌은 안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계약의 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최근의 횡령·배임죄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재물 보관자’ 지위를 엄격히 해석한 것”이라고 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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