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 신세’ 고법 부장판사, 조희대 시대에는 해뜰까
과거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관의 꽃’으로 불렸다. 판사 경력 20년 이상인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에서 3명 중 1명꼴로 발탁 승진하는 자리였다. 차관급 대우를 받으며 법원장에 이어 대법관도 바라볼 수 있는 선망의 보직이었다. 법원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고법부장 승진이 됐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명수 법원’이 지난 2017년 9월 출범한 뒤로 고법부장들은 ‘암흑기’를 맞았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고법부장 승진 제도 자체를 폐지해 더 이상 고법부장이 나올 수 없도록 했다. 또 고법부장들이 지방법원장도 될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상 고등법원 합의부 재판장만 하다가 판사 생활을 마치게 만든 것이다. 고법부장에게 제공되던 관용차도 없애버렸다.
한 고법부장은 “김 전 대법원장이 법원의 주류를 진보 성향 판사들로 교체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법원 엘리트이며 보수 성향이 많은 고법부장들을 고립시키고 지방법원장 등 주요 보직에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넣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 인사가 이런 식으로 되자 지난 2021년 고법부장 12명이 ‘줄사표’를 냈다. 김 전 대법원장 취임 첫해인 2017년 134명이던 고법부장은 충원 없이 퇴직만 하면서 올해 초 78명으로 줄었다. 다른 고법부장은 “20년 넘게 판사로 최선을 다해 고법부장이 됐는데 법원에서 밀려나는 신세가 되자 울분을 터뜨린 동료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최근 ‘조희대 법원’이 출범하면서 “고법부장들에게도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는 말이 법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고법부장들은 지방법원장이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법부장 중에는 판사 경력 30년이 넘는 사법연수원 18~19기 출신도 일부 있다. 또 고법부장 상당수는 10년째 고법에 머물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법조인은 “고법부장들은 판사 중에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면서 “지금처럼 능력과 상관없이 지법부장 중에서 ‘인기투표’식으로 법원장을 뽑는 시스템은 이미 재판 지연 문제를 일으켰고 앞으로 사법 서비스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했다.
15일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선 방안도 논의될 예정이다. 고법부장들의 의견이 여러 경로로 조 대법원장에게 전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내년 1월 법관 인사에서 고법부장들이 법원장에 임명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법조인은 “인사제도 변경에 시간이 걸리고 법원장 승진을 기대하고 있던 지법부장들이 반발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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